쌍둥이 중 하나가 바다에 살고 하나는 산에 산다면, 둘이 나이는 수학적으로 아주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우리가 긴 꿈을 꿀 때면, 뇌는 실제로 시간의 흐름을 보다 길게 인지한다는 사실은요?
있는 힘껏 달리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흐른답니다.
로켓을 타고 멀리 우주 너머로 떠난 자가 딱 4년 후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연인이 호호백발이 된 채 정거장에 서 있었다는 공상과학 이야기를 아시나요?
이런 얘기를 갑자기 왜 하냐고요?
그야... 로미노프, 당신이 거의 이틀 내리 잠만 자고 있기 때문이겠죠.
꿈도 꾸지 않고 가만한 당신에게는 이 세계가 한없이 느리겠지만,
곁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온갖 정성을 다하는 하야는 당신보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고 느낀답니다.
온 세월이 다 무색할 정도로.
이제 일어나는 게 좋겠다는 말이에요.
벌써 아침이잖아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스르륵 눈만 뜬 채 깜빡이며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 머리를 짚으며 느리게 상체를 일으키고는 주위를 훑어본다.)
무거운 눈을 뜨자 창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토록 좋은 날이라서 이만 일어나야지 싶기도 하지만,
이토록 좋은 날이기 때문에 좀 더 자고 싶기도 해요.
삶과 죽음이 그랬듯이.
당신을 잠식했던 감각이 그러했듯이.
...보아하니 '시도'가 잘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묘한 해소감 때문일까요?
구태여 이렇게 좋은 날에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애써서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허탈할 정도로 성큼 멀어진 감각을 되새기다 보니...
가만, 곁에 하야가 없네요.
어이없다는 생각인 걸 알면서도 잠결에 분명 계속 곁에 있어줬다는 걸 느꼈는데 말이에요.
어딜 간 걸까?
잠시 침실을 나가볼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고개를 몇 번 흔들어 멍한 정신을 깨우고는 침실 밖으로 나가본다.)
침실을 나섰지만 하야의 모습은 곧장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의 기척을 느꼈는데... 역시 착각인 걸까요?
아리송해 할 찰나,
갑자기 초인종이 울립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분명 올 사람이 없을텐데... 현관으로 다가가며) 누구십니까?
집배원:택배입니다!
아니 택배 아니고(ㅋ) 우편입니다!
확실히 우편물이 배송될 시간이긴 하지만... 별달리 주문한 것도 없는데 누가 무엇을 보낸 걸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놓고 가주세요.
집배원:네, 그럼 수고하세요!
인터폰 너머로 집배원은 작고 반듯한 편지봉투 한장을 놓고 금세 돌아갑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모양이에요.
대체 누굴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무도 없는 거 확인하고는 문을 열고 편지를 가져와 앞뒤로 돌려가며 발송인 찾아본다.)
발신인에는 다름아닌 하야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이름을 마주하자마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니 이내 다시 차분해진 머리로 봉투부터 뜯어본다.)
봉투를 뜯어 보면 작고 아기자기한 글씨체가 편지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보이네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역시 왔었나... 착각이 아니었구나. 복잡한 심정에 한참동안이나 편지를 쓸고 만지작거리다가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제서야 정말 제가 죽으려 했단 것이 실감나는 듯 하다.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봉투에 넣어두고는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머리를 굴려댄다.)
당신이 편지를 읽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으면 어느 한 방 안에서 하야가 나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황 하야아름:아, 아저씨... 일어났어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하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입만 벙긋댄다..)
황 하야아름:왜 그래요?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겉으로 봤을 땐 멀쩡해보였는데, 괜찮아요? (슬금 앞으로 다가가며 네게 손을 뻗는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하야... (머뭇..) 그... 미안해요. 2년만에, 만났는데 추한 꼴을 보여서...
황 하야아름:무슨 소리예요, 정말... 그게 꼭 아저씨 탓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많이 힘들었나보다... 싶죠. 제 말이 맞아요? (느리게 어깨 토닥...)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래요. 그랬나봐요. (어깨를 두드려주는 손길에 심정이 더욱 복잡해져만 간다. 살짝 인상을 쓴 채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황 하야아름:(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보여 조금 당황한 눈치... 하기야 제 생각보다 덜하진 않겠다 싶었지만서도) 뭐... 제가 제 집 찾아오겠다는데 지도라도 찾아가며 왔어야 했나요? 생각나서 들렀었어요. 근데 그 이유도 이젠 가볍게만 들리고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건 그렇죠. (더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어색하게 제 팔만 쓸어내리며) 못 본 새에 더 성숙해진 것 같네요. (괜히 실없는 소리..)
황 하야아름:성숙... 그렇겠죠, 아무래도 떨어져 있던 시간이 있으니까... 그래서 하야라고 불러주는 거였군요... (내심 씁쓸한 표정) 하긴 어린이란 호칭을 붙이기엔 많이 크기도 했네요.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하야를 보니 얼굴에 피로가 만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 이 느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야가 순간 휘청이며 몸을 가누질 못하네요.
대체 얼마나 못 쉰 걸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놀라 휘청이는 몸을 부축해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하야, 무리했어요? 아무래도 쉬어야할 것 같은데... 나 때문이면 미안해요.
황 하야아름:아... 아니에요, 절대로. 아저씨 잘못은 없어요. (괜찮다며 부축해주는 네 팔을 약하게 밀어낸다.) 그냥 제가 자기 싫어서 버틴 것 뿐이니까 별로 무리한 정도도 아니고... 걱정 마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속상한 듯 바라보며...) 그게 무리한거죠. 잠은 왜 안 잤어요?
황 하야아름:의지로 버틸 수 있으면 무리 정도까지야... (자신감은 없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눈치...) 잠은... 아저씨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또 자기 탓이라고 할거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던 참) ...그럼 일어났으니까 이제 쉬어요. 못 잔 잠도 자고... 밥은 챙겨 먹었어요?
황 하야아름:(아저씨 한국인 다됐네) 싫어요. 잠은 저녁에 잘 거예요. 밥은 대충... 어떻게 잘 해먹었으니까 너무 제 생각만 하지는 않아도 돼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왜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요? 한 눈에 봐도 지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 ...그럼 달리 누구 생각을 해요.
황 하야아름:쓸데없다니... 저는 아저씨랑 있고 싶어서 온 거지, 잠을 자러 온 게 아닌데... (완전 서운한 얼굴로 홱 노려본다.) 아저씨야말로 자기 생각은 쥐뿔도 안 하면서, 제가 안 잔다고해서 억지로 돌려보낼 방법도 없을걸요? (메롱메롱~)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것도 쉬어가면서 하는거죠. (고집에 못이겨 한숨 폭 내쉬며...) 그럼 그 피곤한 몸으로 밤까지 뭘 어쩔 생각이에요?
황 하야아름:밤까지 뭐... 집안일이라도..? (딱히 생각해두진 않았다..) 요새 청소 안하죠? 집 오자마자 먼지 냄새가 장난 아니던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확실히 청소에 소홀했으며...) 그건... 청소할 정신이 없어서. ...어차피 누가 오지도 않으니까요.
황 하야아름:저기요, 아저씨~ 아저씨 건강도 생각해야죠, 참... 예전에 혼자 살 때도 이렇게 청소를 안하고 살았었어요? 엄청 꼼꼼하길래 난 무슨 결벽증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더만...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결벽증 같은 거 없어요. (한숨...) 그냥 청소할 의욕이 없어서요. 청소 좀 안 한다고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더군요.
황 하야아름:그건... 당연하잖아요... 애초에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분위기... 라던가 집이라도 꾸미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던 건데요... 의욕 없다고 밥까지 안 먹는 건 아니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이제와서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요. (휑한 집안 둘러보며) ...확실히 사람 사는 집같지는 않긴 하네요.
황 하야아름:그럼 아저씨한테는 지금 뭐가 제일 중요한데요? 제가 여기 왔을 때 순간 과장 조금 보태서 빈집인줄 알았어요. 잠도 좀 자고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살아야지, 집 안에만 콕 박혀있으니까 의욕이 없는 거 아니에요. (안하려고 했는데 절로 잔소리 술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2년 내내 그랬던 건 아니니까 너무 뭐라 그러지 마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잔소리에 어색해하며) ...그러는 하야는 그동안 잔소리 들을 부분 없이 잘 지냈나 보네요.
황 하야아름:...알았어요. (뚝.. 뭐라하지 말란 말에 순순히 그만두며 네 눈치를 본다.) 물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저씨보다야 잘 지냈겠죠. 그보다 어떻게 친구 한명 두지 않을 수가 있어요? 아저씨 근황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일부러 저 걱정시키려고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이 나이에 친구 사귀는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근황은 알려봐야 좋을 것도 없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뒤늦게 생각하니 좀 심각했다 싶어 미안해지며..)
황 하야아름:그 나이에... (역시 무리긴 한가) ...됐어요, 지금 이렇게 있으니까... (졸린지 작게 하품하며 눈 부비적) 그럼 이제 뭐부터 하지... 세탁기부터 돌릴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정말 잠은 안 자도 되겠어요? 어디 머리만 대면 기절할 것 같은데...
황 하야아름:안 잔다니까요. 별로 졸리지도 않아요! (허리에 손 척 올리고 완전 졸린얼굴로 꾸벅임)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렇다면야 뭐... (하다가 중간에 잠들겠지...) 그럼 아무거나... 세탁기부터 돌려요.
황 하야아름:음! 옷들은 잘 빨고 있겠지요? 이것저것 집안일이라도 잔뜩 해놓으면 기분도 상쾌하고 얼마나 좋아요. (몽짱몽짱~ 옷들 모아서 세탁기 안에 와르르 넣는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뭐...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빨고는 있었죠. (내가 해도 되는데... 어정쩡하게 바라보며)
황 하야아름:(왜바라보고만있어) 뭐해요? 이거 아저씨 일인데요. 제가 다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째릿~)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네네, 합니다. 해요... (집안일에 오랜만에 손대봐서 갈피 못 잡으며... 일단 세탁기 꾹꾹 눌러서 돌려놓는다.)
교육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교육
기준치:
70/35/14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wow~ 완벽하게 세탁기를 돌려냅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옷가지들이 보이네요.
황 하야아름:집안일도 잘 하는 사람이 말이야~ (장하다며 등 팡팡 쳐줌) 이제 설거지 하세요. (약간 부려먹는 느낌)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뭐지? 묘하게 부려먹히는 기분 들며... 정신 차리고 얼른 설거지하러 감;)
황 하야아름:(쪼르르 옆에 가서 구경한다.) 이렇게 열심히 움직이니까 좀 살 맛이 나죠? (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네, 뭐... 확실히... 훨씬 낫네요. (먼지 쌓인 그릇들 빡빡 닦으며)
황 하야아름:(와... 얼마나 안 닦았으면 먼지가 쌓여있어) 조금 밥도 잘 먹고 다니나 의심되기 시작하거든요...
손놀림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손놀림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박박깨끗~ 광채나는 그릇들이에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설거지 다 한 그릇들 세워놓으며~ 간만에 뿌듯한 기분~) 이제... 다음은 뭐부터 하죠?
황 하야아름:음... (다음 생각 안했음) 글쎄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거부터 해요. 마냥 제가 하는 대로만 따를 수는 없는 법이라구요~ (있는척 포장하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음... 청소기나 돌리자. 거실 구석에 처박아뒀던 청소기 슬슬슬 꺼내오며) 그럼 남은 건 알아서 할 테니까 하야는 들어가서 좀 자요.
황 하야아름:아, 아무래도 큰 지진이었으니까요... 그거 말고도 다른 얘기도 하는 것 같던데, 이 기회에 아싸리 옆집이랑 친해지는 거예요? 아저씨 친구 잘 만드네~ (기특한눈빛)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뇨, 지진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뭐야 저 눈빛) 그런 거 아니에요.
황 하야아름:뭐가요? 별로 이상한 건 모르겠던데... 왜, 친구하지. 사람도 좋아보이던 걸요, 전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좋은 사람이란 걸...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언제 봤다고 그런 소리를... 맹랑한 건 여전하네요. 마피아니까 더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건 알잖아요?
황 하야아름:그치만 아저씨 2년 내내 얼굴도 안 비췄던데요, 뭘. 거기 사람들도 아저씨 얼굴 잊을 거 같다고 저한테 뭐라고 한단 말이에요~ (꿍시렁) 아냐아냐, 그 사람 착한 사람이야.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나참) 알았어요, 친구는 생각해볼테니까 이 문제는 넘어가죠.
황 하야아름:좋아요! 그럼 이 얘기는 끝~ 이따가 밤이 되면 같이 들판이라도 가지 않을래요? 딱히 이유는 없고 아저씨랑 분위기 한번 잡아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멍청~)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갑자기요? (고민..) 뭐... 그래요.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분위기가 잡아질 지는 모르겠네요.
황 하야아름:(어째서?) 저랑 있으면 분위기고 뭐고 왕창 깨질 것 같다는 소리예요? (억울!) 기껏 편지도 왕창 분위기잡고 진지하게 써줬는데, 속으로 비웃었죠! (잉잉이익~~! 발쾅쾅구른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편지는 기특했어요.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머리 쓰담아줌) 안 비웃었으니까 진정해요.
황 하야아름:(머리 쓰다듬어지자 얌전해지며) 정말... 알고 있어요. 이렇게 어리고 귀여운 애가 쓴 소중한 편지니까 말이죠. 절대, 절대 절대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제 분신으로 생각하라구요! (또 발 쾅쾅)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넵... (역시 맹랑하군...) 소중한 편지 소중하게 대할테니까 걱정마요.
황 하야아름:좋아요, 그럼 밤이 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그동안 하고싶은 거라도 있어요? (없겠지만 혹시나싶어 물어보는듯)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딱히 없어요.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대답) 하야는요?
황 하야아름:(역시) 저도 없어요. 사실 아저씨 얼굴만 잠깐 봤다가 다시 나오려고 했던 거라... 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저희 옛날엔 뭘 하며 시간을 보냈었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글쎄요... 같이 티비를 보거나 산책을 한다던가... 아니면 장을 봤겠죠.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게, 2년이랑 시간이 꽤 길기는 했나봐요.
황 하야아름:그렇겠죠. 하물며 아저씨는 나이도 있는데 기억 못한다고 해서 뭐, 이상하지는 않잖아요? (어깨으쓱~) 장 보기는 너무 늦고... 산책도 밖에 나가야 하고... 그 때 제가 좀 얌전했었나봐요? (으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곰곰...) 얌전했을 리가 있나요. 지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했진 않았죠. 사고 친 적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황 하야아름:그랬던가? (모르는척) 아닌데 완전 얌전했던 거 같은데... 말도 잘 듣고 착하게 지냈던 거 같은데... (눈치...) 그럼...~ 말해봐요! 제가 사고친 게 뭐가 있나, 언제 어디서 며, 몇시 몇 분! (왕유치함)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빤히봄) 사고친 게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기억할 수도 없죠. 음료를 가져다주려 오다가 자기 발에 걸리는 바람에 내게 들이 부었던 사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음음 그랬더랬지)
황 하야아름:(아ㅋ 삭제하고싶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아니 그건... 그건, 아니죠, 거 제 발에 걸렸던가요? 제 기억이랑은 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전 분명 벽에다가 엎었을 텐데 그 옆으로 굳이 쏙 나오지 않았던지..? (버벅버벅)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니라고 잡아떼도 너무 선명한 기억인데요. 그 뒤로도 물도 엎은 적도 있고 그릇 깬 적도 있고 참 다사다난했었죠.
황 하야아름:(아... 아앗...) 그... 그런 게 왜 선명한데요... 물 엎고 그릇 깨는 안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왜 이렇게 잘 기억하는 거예요! 부끄러워! 빨리 밖에 나가버릴래!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현관 앞까지 쪼르르 달려나간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뭘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다 추억이죠. (하하 어쩐지 얄미운 미소~^^ 뒤따라 현관으로 가며) 같이 가요.
황 하야아름:그러면서 웃고 있잖아요, 어쩐지 얄밉게 웃고 있어, 이 아저씨..!! 웃긴 추억이다 이거지! (으르릉~~거리면서 문 열어줌) 나와, 나와, 빨리 나와요. (등 툭툭툭)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재밌는 추억이죠. (등 툭툭툭 때려지며 밖으로 나온다.) 급할 거 없잖아요. 천천히 가요.
황 하야아름:그래요, 아저씨만 재밌고 웃긴 추억. (흥...) 천천히 갈테니까 중간에 지친다 소리 하면 안 돼요~
밤이 되고 하야와의 약속대로 집에서 나와 뒷뜰로 향합니다.
딱히 누구의 사유지도 아닌 들판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짙은 원색계통의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색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꽃입니다.
하야가 꺾어 온 바로 그 꽃이죠.
적색, 청색, 주황색과 청록...
하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역시 노란 빛입니다.
밤 속에서도 노란 꽃은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가로등이 드리운 빛만으로도 마치 태양 아래의 이슬처럼 환히 반짝입니다.
하야도 분명 그래서 특별히 노란 색을 꺾어온 걸지도 몰라요.
꽃들의 바다에 잠시 취해 있었더니 하야는 돗자리까지 가져와 판을 까네요.
조금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합니다.
벌렁 드러누워 옆을 두드리는 하야를 보고 있어도...
들판 한가운데에 드러눕는 건 영 기분이 이상할 것 같습니다.
벌레도 있을 것 같고 말이에요...
하지만 하야가 정말정말 하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그냥 못 이긴 척 들어줄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휴... 그래 2년 전까진 시체도 만졌는데 이 정도 쯤이야... 두드리는 옆자리에 석연찮게 드러누우며...)
황 하야아름:(신난다) 사실 오늘 유성우가 내린대요. 아저씨랑 같이 별 보고 싶어서 나오자고 했던 거였어요... 어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뉴스도 안 보고 살아서 유성우 소식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네요. (하늘 멀뚱...) 어떻긴요, 좋네요. 마음 편한 것도 오랜만이고...
하야의 말에 푸른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으면 시야의 어딘가에서 빛이 선을 그립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걸 보고 있자면 하야가 편지에 적어주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자신은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그는 한 자 한 자 종이에 담아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때의 일들에 대해, 또 함께 지내오며 못다한 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요.
어쩌면, 그래요.
오늘은 그런 것을 쏟아내야만 하는 밤입니다.
실은 별이 아니라 그저 작은 모래알일 뿐인 유성체가 지구의 하늘에 스치며 기적적으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밤.
실제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 극한의 거리에서 우리가 우주의 먼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
살면서 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살면서 그가 나를 얼마나 야속하게 했는지.
또 살면서 그를 아꼈고, 그가 때로는 얼마나 미웠는지.
너무나 사랑해서, 도통 한 면 만을 바라볼 수 없어서,
그를 대할 때면 도무지 얄팍할 수가 없어서 느껴야만 했던 그 수많은 감정들,
마음들, 대화들...
어쩌면...
죽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뜸...) 좀 뜬금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어제는 미안했어요.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죽으려고 하면 안 됐는데.
황 하야아름:(멀뚱) 어... 네, 진짜 뜬금 없네요. 그런 생각을 지금에서야 할 수 있다는 게... 당연히 죽는 게 옳다고 누가 그러겠어요. ...제가 계속 아저씨 거리지만 아저씨가 그렇게 나이 많은 것도 아니에요. 제가 좀 어릴 뿐이지... 그, ...로미... 로마노프... 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하하... 서른 넘으면 다 아저씨죠. 그런 김에 하야도 아저씨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하야 어린이가 벌써 아저씨라니... (상상해보며~)
황 하야아름:(시, 싫어) 누가 그래요... 상상만 해도 기분 이상한데요, 그거... 뭐어, 저는 아저씨가 안 될 거니까 그렇게 크게~ 걱정 되지는 않지만요! (흐흥) 아저씨한테는 내가 제일 어리게 보일거잖아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렇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 눈엔 어릴테니까... (상상하니 씁쓸미묘한 듯)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땐 아저씨로 보일 수도 있겠어요. (농담~)
황 하야아름:제... 제 피부는 100년이 지나도 이 상태일 걸요?! (호들갑) 그... 런 것 보다는 추억거리나 꺼내보자구요, 정말... 안 좋은 기억 말고! 그런 것들은 다 잊어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하하~) 그럼 추억거리 중에 뭐 기억에 남는 거라도 있어요? 몇 년을 같이 지냈으니 많기야 하겠지만.
황 하야아름:음... 아저씨가 편의점 샌드위치 세개 사준 거... 성적 올랐다고 용돈 준 거... 솜 터진 인형 고쳐준 거... 등등... (막상 생각해보려니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만하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편의점 샌드위치 세개 사준 걸 아직도 기억해요? 그게 뭐라고... 더 사줄 수도 있었어요.
황 하야아름:그치만 그 때는 엄청 놀랐는 걸요, 전 한 개도 겨우 사먹었을 때거든요~ 지금이라면 한... 20개! 어때요, 감당 못하겠죠~ (후 후 훗)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너무 얕보는 거 아니에요? 감당 못 하긴요. 50개도 거뜬하죠.
황 하야아름:...그... 그런 데에 돈 쓰지 마요... (당황;)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끼는 사람한테 돈 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내 맘이에요.
황 하야아름:그거야... 그렇지만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이 욕심내서 섬 하나를 사달라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잖아요... 너무 막 퍼주는 것도 문제있다, 그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섬 하나 사달라고 할 욕심까진 없는 사람이니까 괜찮아요. 쓸 일도 없는 돈인데 뭐 어때요? 퍼주는 낙으로 살았어요.
황 하야아름:(그거야그렇지만) 네에, 돈 많아서 좋겠어요... 그치만 이제 저도 남한테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이 많으니까 굳이 퍼주지 않아도 돼요. 해줄거면 뭐... 다른 사람, 옆집이라던가?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됐어요. 정 없는 사람한테까지 퍼줄 정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선그으며;)
황 하야아름:(아) 정이야 나중에 생기게 될 거잖아요~ 난 아저씨가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만났을 때 저한테 돈을 와르르 쏟아부어주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걍 금전감각이 다른걸수도)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하야 같은 친구는 이제 두번 다시 없을 것 같다는 촉이 와요. 뭐... 괜히 새 사람 사귀려고 시간 노력 들이고 싶지도 않고.
황 하야아름:음... 뭐... 저도 아저씨같은 친구는 거의 처음이라고 봐도 될 정도니까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응응~) 그치만 친구를 저만 사귈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봐요. 아저씨 외톨이 되는 거야~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왜 이렇게 새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네요. 꼭 사라질 사람 마냥. 외톨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새 친구는 됐어요.
황 하야아름:그냥... 아저씨가 2년 간 혼자 살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걱정되서 그래요. 제가 없다고 그렇게까지 망가질 일인가 싶기도 하고... 저도 사람이니까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몰라요. 제가 마냥 아저씨 곁에서만 있을 순 없잖아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지난 2년은... 상황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에요. 가족을 잃다시피 하고서도 십수년을 살았어요.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에요. (기분 안 좋아지는 듯...)
황 하야아름:흠... 그래요? 그럼 제가 주제넘게 혼자 착각했나봐요. 아저씨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네, 제가 잘못했으니까 기분 풀고~ (으구구으구구 볼 죽 잡아당김)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야야) 대흐니까 이거 나요(;)
황 하야아름:(귀엽~ 놔준다.) 이 나이 먹고도 그런 깜찍한 발음을 할 수 있다니... 이거이거, 학창시절 때 여럿 울려봤겠어요~?! (저질농담;)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순수하던 하야 어린이는 어디 갔어요.
황 하야아름:순수함의 정의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무지함이 아닐까요? (쌉소리대잔치) 그보다 하야 어린이라고 해줬네요~ 저 아직 여기 있지요~ (밝은얼굴^^)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왜 저러는 건지) 옛날의 하야 어린이를 말한거지 지금은 아닌 것 같네요, 하야.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어요.
황 하야아름:뭔 소리람... 아저씨는 제가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좋은 게 아니에요? 옛날엔 아저씨가 무슨 말만 하면 예? 그게 뭔데요? 에? 뭐라고요? 엥?? (자기 성대모사함)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땐 귀여웠죠. 지금은 그런 귀여운 맛이 좀 사라졌다고 해야하나... 아쉽네요. (한껏 아쉬운 얼굴...)
황 하야아름:아까 전에 귀엽다고 해놓고서... (자기입으로한말이었음) 다시 봐, 다시 봐봐요. 어디가 사라졌어, 봐봐. (얼굴 쭉 들이밀구 왕창 째려본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암만 봐도 사라졌네, 사라졌어요. (들이미는 얼굴 슬슬 밀어내며) 이제 어른 하야 밖에 안 남았네요.
황 하야아름:이 아저씨가... (우씨~ 뚱한 얼굴로 스르륵 물러난다.) 그래서, 어른 하야는 마음에 안 든다? 역시 지금의 저 같은 건 필요없다 이거죠! (크윽~~!)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어른 하야가 마음에 안 든다고는 안 했어요. 지금도 좋죠. (하하~ 머리 쓰담아줌)
황 하야아름:거짓말, 예전의 귀여움 가득했던 멍청한 하야 어린이가 더 좋으면서! 아저씨도 변했어요, 저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거죠! (왁왁 소리지르면서 얌전히 쓰다듬받는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식긴 누가 식었다고 그래요. 그 귀여운 하야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 하야가 된 건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얌전하니 귀엽군~ 머리 삭삭)
황 하야아름:흥... 알아요, 아저씨가 저 좋아한다는 거~ 그래도 역시 어렸을 때 사진을 조금 더 찍어두는 거였는데... 아쉽다, 아쉬워~ (슥슥삭삭... 부비적 골골) 아저씨 취향은 귀여운 사람인가보죠? (막)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사진은 아쉽네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취향이라기보단 그냥 좋은거죠. 귀엽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황 하야아름:그래요? 전 아저씨같은 취향이 좋아요~ 나랑 잘 놀아주는 사람~ (히죽거리며 웃다가 이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이정도면 많이 놀았어요, 이제 집에 갑시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웃는 얼굴 바라보며 슬 웃어보이다가 따라 몸을 일으킨다.) 그래요. 갑시다, 집에. (머리며 옷 툭툭 털어줌)
황 하야아름:(가만히 털어주는 거 보다가 자기도 툭탁툭탁 털어준다. 등 팡팡 머리 박박! 여전히 힘조절 잘 안되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 아프다;) 됐어요, 이제 됐어요. 가요. (등 떠밀며)
황 하야아름:네에~ 가요, 갑니다~ (자연스레 떠밀리며)
...
...
반짝,
눈을 뜨니 벌써 아침입니다.
밤새도록 별을 본 것 같았는데 어느 새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와 깊이 잠든 모양입니다.
시계를 보니 확실히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나고 말았네요.
하야는 자리에 없는 걸 보아하니 먼저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분명 새벽까지 뭔갈 쓰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모르긴 몰라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겠죠.
며칠 부쩍 자신 때문에 무리하는 게 느껴져 마음이 쓰이고 맙니다.
어쩌면 아침이라도 만들고 있을지도요.
...
무리를 해서인가?
이상하게 찌뿌둥하고 졸린 몸을 억지로 일으켜 거실에 나갔는데 하야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거실 테이블 위에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집배원이 올 시간을 넘겨서까지 자고 말았으니, 그가 대신 받았겠죠.
자기가 쓴 편지를 자기가 다시 받았을 하야를 생각하니 웃음이 조금 나오고 맙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편지 들어다 열어본다.)
편지를 뜯으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뭘 기다리라는 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편지에 뭔가 싶으면서도 기특하고 애틋한 내용에 절로 편지지를 매만지게 된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편지를 고이 접어 편지봉투에 넣어두고는 하야를 찾아본다.)
편지를 고이 접어 넣고 그 봉투를 뜯고 살짝 남은 귀퉁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집에서 못 보던 종이곽이 보입니다.
이건...
수면제입니다.
지능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몸의 이 기묘한 감각.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른하고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
이건 수면제를 먹었을 때 일어나는 사이드이펙트입니다.
당신 기억에 제 손으로 이걸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이걸 버린 기억 또한 없습니다.
지난 밤, 자기 전에 하야가 주는 물을 한 잔 마셨던 것도 같지만요.
그리고...
그리고, 어쨌더라?
뭔가 조리가 맞지 않는 발상, 앞뒤가 없는 불안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야는 어디 있는 걸까요?
집안 어디를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급한 마음이 들어, 다짜고짜 밖에 나가 찾아보자는 생각도 밀려 옵니다.
혹은 옆집 사람, 혹은 빵, 넘어져서 깨진 화분을 사러...
아무튼 모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가능성을 머리가 멋대로 뽑아내는 걸 멈추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야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갈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한 치 고민도 없이 급하게 밖으로 나가본다.)
현관문을 열자,
바닥에 하야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이성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 -8.
그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치지도 않고, 표정도 온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경직조차 거의 오지 않은 차갑고 차가운 몸.
현실이 붕괴됩니다.
삶이 붕괴됩니다.
세상이 붕괴됩니다.
하야가 죽어 버렸습니다.
어떤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단지 죽었다는 결과로만 덩그러니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만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히 느껴집니다.
이 기가 막힌 현실이 이다지도 강렬하게 와닿는 건, 필시 당신이 이미 죽음의 감각이 무엇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명료한 감각.
죽음, 그 확고한 존재.
도저히 곁을 떠나지 않는...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망상이 느껴집니다.
기껏 살아가자고 생각해 본 자신이 멍청하게만 느껴집니다.
손 안에서 그가 쓴 편지가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거립니다.
아, 아까 레터 오프너를 썼었죠.
종이를 베는 칼은 의외로 날카롭고 또 가느다랗습니다.
수면제는 한 알만 쓰고는 몽땅 버렸더군요.
고작 위에서 떨어지는 책에도 다칠 수 있는 몸.
부엌에 있는 식기들은 또 어떻고요.
가장 확실한 건 중력입니다.
유성처럼.
우리는 그저 아주 작은 먼지.
순간에만 반짝이는, 내일이면 시들,
노란 빛...
하야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요?
어째서 이런 모든 글자를 남기고,
이런 모든 행동을 남기고,
이런 모든, 그의 모든,
모든 그를 당신에게 떠맡기고 떠난 걸까요?
차라리 죽으란 건 아니었을까요?
어떤 정교한 악의처럼.
뭐가 됐건, 하야의 마음을 지금의 당신이 생각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될 일입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믿기 어려운 광경에 충격받고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광경을 마주한 나는 이유도 원인도 알 수가 없는데, 너는 내게 무슨 감정을 주고싶어서 이런 짓을 벌인건가. 아파져오는 목이며 젖어가는 눈시울에 코끝이 찡한 감각.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어 입만 벙긋이다 결국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린다. 살면서 몇 번이고 마주했던 사람의 시체인데, 그게 너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까지 무서울 수가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너를 끌어와 뺨이며 차갑게 식은 몸을 쓸어만져봐도 네가 죽었다는 감각만 생생히 느껴질 뿐 그 어떤 위로조차 받을 수가 없다. 정말 너는 죽었구나. 얼마만에 눈물을 흘려본 건지, 그동안 쌓아왔던 눈물이 이제야 터져나오기라도 하는 듯이 흐르는 눈물이 도저히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대로라면 눈물로 옷까지 적실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단순히 친구가 아니라 내 두 번째 가족이었다. 나는 또 가족을 잃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 옥죄어오는 죄책감이며 무능함에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 너는 왜 하필 그 날 집으로 돌아올 마음을 먹었을까. 나를 왜 살렸을까. 왜 다시 한 번 살고싶게 만들었을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 줄 네가 없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갔다고 해도 무색할만큼 너를 위해 울었고 나를 위해 울었다. 차갑게 식은 너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다 지쳐 더 이상 울 기운도 남지 않았을 때, 그제서야 팔이 저리도록 안은 네 몸을 가지런히 놓아 눕혀준다. 얼마나 울었는 지 목이 다 아플 정도였다. 아니지, 이 정도는 아픔도 아니지. 그 어떤 아픔도 세상을 잃은 아픔보다 더 할 수는 없다. 그래, 내 세상이 무너진거야. 무너진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는 없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니, 내가 그 정도로 인내가 깊어 보였던 걸까. 이런 상황을 마주한 내가 어떻게 하루를 더 버틸 수가 있는지. 너는 내게 다시 삶을 주면 안 되었다. 널 만나기 전까진 죽기 위해 살던 몸이었고, 이미 한 번 죽음을 각오했던 몸이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 결심은 어렵지 않았다. 결심을 마치고는 걸친 옷을 벗어 식은 네 몸 위에 덮어준다. 이런다고 온기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차갑게 널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네 시체를 뒤로하고 레터 오프너를 찾아 손에 쥐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삶이 두려울 뿐이지.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쉽다. 나는 살아가기에 너무 지쳤어. 숨을 끊을 도구를 쥔 손은 떨리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한 숨도 떨리지 않는다. 조금의 떨림도 두려움도 없이, 남은 미련 하나 없이 그대로 날카롭고 가느다란 칼을 심장부에 힘껏 깊숙히 찔러넣는다.)
그래요.
당신을 위하는 것은 하야 말고도 세상에 즐비합니다.
무기, 약, 그리고 중력.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정말로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하야보다 훨씬 편하고 덜 복잡합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마음 쓸 필요도 없습니다.
■■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존재만 할 뿐,
당신과 상호 간에 소통을 할 요소가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분명 죽음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당신은 목숨을 끊고 싶어하는 군요.
어쩌면 그를 만나기 위해.
어쩌면 단지, 그저, 단순히, 죽음을 바라서...
...이유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하던 모든 일을 그치고, 끝없이 안식하세요.
...
...
느닷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간은 절대적인 간격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긴 꿈을 꿀 때면, 뇌는 실제로 시간의 흐름을 보다 길게 인지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있는 힘껏 달리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흐른답니다.
로켓을 타고 멀리 우주 너머로 떠난 자가 딱 4년 후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
그립던 그 사람이...
이런 얘기를 갑자기 왜 하냐고요?
그야 로마노프, 당신이...
...
...
하야가 문을 열자,
바닥에 당신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
차갑고 차가운 몸.
현실이 붕괴됩니다.
삶이 붕괴됩니다.
세상이 붕괴됩니다.
당신이 죽어 버렸습니다.
어떤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단지 죽었다는 결과로만 덩그러니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만이 지나칠 정도로 분명히 느껴집니다.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명료한 감각.
죽음, 그 확고한 존재.
하야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습니다.
당신의 맥을 하염없이 짚고 손을 무작정 주무릅니다.
하야는 아무런 온기가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열이야말로 생명력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음이 춥게 느껴지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단순한 비유격이 아니라는 것 또한요.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던 하야는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거리며 문 밖을 나섭니다.
마치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처럼.
당신이 자신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
한참 후 돌아온 하야의 손에는 뿌리까지 캐인 밀짚꽃 한 송이가 들려 있습니다.
하야는 꽃을 꽃병에 담고 손을 씻은 후 당신을 안아올려 침대까지 가 눕힙니다.
그 일련의 행동에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어서,
그저 바닥에 잠든 이를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
...
그래요.
그날, 당신은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잘 됐는데...
당신은 살아있군요.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
펜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꺼풀을 가물가물 꿈벅이면 어둠의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빛이 흔들립니다.
촛불처럼요.
촛불처럼 흔들리는...
...하야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황 하야아름:조금 더 쉬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펜 소리.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가 무언갈 쓰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더 자세히 묻기엔 너무나 졸려와요.
몸은 물 속에 잠긴 듯이 무겁습니다.
한 번 죽음을 시도한 몸.
곧장 기운을 차리기엔 힘도 시간도,
그리고 마음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야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기운도 없고 할 말도 없다..)
...
...
누군가 당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집니다.
일어나보니 당신은 현관 앞에 쓰러져 있고, 당신을 깨우는 것은 놀란 표정의 옆집 사람입니다.
일어난 당신은 무의식 속에서 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꿈 속의 말, 과거의 반향.
그 모든 것을.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하야가 쓰러져 있던 것만큼은 기억납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하야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야가 죽기는 한 건지,
죽었으면 어떻게 된 건지,
어디로 간 건지.
대체 이게 다 뭘까요?
무슨 일일까요?
당신의 이상한 행동을 본 이웃이 당황한 목소리를 건넵니다.
옆집 사람:저기... 괜찮으세요? 바닥에 쓰러져계셔서...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 네... 제가 언제부터 여기... 혹시 짧은 검은머리의 청년은 못 보셨습니까?
옆집 사람:그, 글쎄요...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오면서 본 사람은 없었어요. 저... 괜찮으시면 이만 돌아갈까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아... 네. 돌아가주세요,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이웃을 뒤로 하고 현관문을 닫으면 이제 대체 무얼 하면 좋을까요?
사라진, 혹은 죽은 하야는 느닷없이 밀짚꽃을 돌봐달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습니다.
협탁 위의 그 꽃이 밀짚꽃인가 봅니다.
하지만 익숙한 꽃도 아니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
이럴 때 그런 걸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하야의 말이니 꽃 돌보는 법을 찾아 도서관이라도 가보는 게 좋을까요?
혹은 이곳에서 계속 하야를 기다릴 수도 있겠죠.
...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도중,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립니다.
인터폰 너머로 보면 하야는 없고, 바닥에 편지 한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네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편지 주워다 문 닫고는 열어본다.)
편지를 열어보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돌아온다니... 언제 어떻게 돌아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2년을 기다리게 만들고 또 이렇게 기다리게 만드는 너를 마냥 미워할 수 없는게 우습기만 하다. 허탈함에 멍하니 자리를 지키다 머리라도 식힐겸 꽃을 돌볼 책을 찾으러 도서관으로 향한다.)
결국 당신은 미련하게도 도서관에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뒤져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건 [식물학개론], [꽃말사전], [봄꽃에 대하여], [당신도 할 수 있다! 꽃 기르기] 이 네 권입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식물학개론부터 펴보자..)
자료조사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식물학에 대한 책입니다.
펼쳐보니 안에는 약용식물학, 자원식물학 등등...
말 그대로 학문적인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구태여 지금 이걸 읽을 필욘 없을 듯합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옆으로 치워두고 꽃말사전 펴봄. 이걸 왜피지?)
자료조사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문득 생각난 김에 밀짚꽃의 꽃말을 찾아보았습니다.
밀짚꽃의 꽃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픔은 끝없이.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 줘요.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실없네... 덮어두고 봄꽃에 대하여 펴본다.)
자료조사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좌르륵 펼쳐보니 밀짚꽃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헬리크러섬, 또는 스트로플라워, 종이같은 꽃잎의 질감 때문에 다른 말론 바스라기라고도 불린다.
꽃잎은 말리면 색과 모양이 반영구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장식용 건조화로 자주 사용된다.
늦봄이나 초여름에 씨를 뿌려서 쉽게 싹을 틔워 키울 수 있다.
온종일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 자라고 물이 잘 빠지는 흙을 좋아하며 물은 보통 정도 주면 된다."
등등등...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그렇군... 가져온 책이 아까우니 남은 책도 펴본다.)
자료조사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꽃을 기르는 법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밀짚꽃과 비슷한 꽃을 기르는 법은 어디있나 페이지를 넘기던 중,
누군가 해놓은 묘한 낙서를 발견합니다.
휘갈겨 써서 알아보기가 힘들군요.
모국어 판정.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언어(모국어)
기준치:
50/25/10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됐다, 집에가자. 꺼내본 책들 제자리에 넣어놓고 도서관 나선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피곤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식은땀이 납니다.
아픈 건 아니지만, 온몸에 들어가 있는 긴장감을 쉬이 풀 수가 없는 탓입니다.
현관 앞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자국도.
그리고 집 안에도.
그 어디에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야속함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룻 밤만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된 하야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저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면 어디로 간 거야?
꽃이 나 보다 중요해?
꽃이 너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막연한 분노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밀짚꽃 만이 어제보다, 그저께보다 더 풀 죽은 모습으로 거의 시든 채 협탁 위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라면 가꾼다 해도 살아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애당초 꽃을 살려두고 싶다면 꺾어와서는 안 되지 않았을까요.
모든 건 이 꽃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밀려옵니다.
...
사는 게 뭐라고.
...분명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신이 위로, 그리고 옆으로 흔들리던 순간 그런 실소를 앞세웠습니다.
막상 소중한 이가 떠나가니 화염 속에 잠긴 기분입니다.
당신이 죽은 듯이 잠든 모습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신이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아마도 시간이 쏜살 같이 사라졌겠죠.
곧 죽게 될 자신의 미래를 기다리며, 당신이 또 얼른 깨어나길 기다리며.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떠났던 건 누구일까요?
그, 혹은 당신.
어쨌든, 당신은 살아 있으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지요.
그게 무엇이 됐든.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다 죽어가는 꽃으로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관리한다고 살아날 거라는 생각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화분에 옮겨 심어두자..)
...
이제 잠들도록 해요.
로마노프.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하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 째 날까지 안식하세요.
...
...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빡입니다.
아니,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빡입니다.
당신은 밀짚꽃 들판에 누워 있습니다.
등 아래에는 돗자리가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마냥 고즈넉합니다.
당신은 곁에 누가 함께 있을지 알고 있습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황 하야아름:...안녕, 아저씨.
하야가 부드러운 미소로 당신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침대에 멋대로 들어와 당신의 손을 붙들고 속삭였던 때처럼.
하늘에선 빛이 내리쬐고 별이 쏟아지지만, 당신과 그에게 그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서로가 이렇게 존재하니까요.
황 하야아름:오늘까지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죽음의 감각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한 번 죽었었다는 걸.
일주일 전 그 날.
황 하야아름:마지막 순간에 아저씨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당신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하야가 자기 자신을 바쳤을 거라는 사실을.
당신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것도 하야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리고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밤에 헤어졌습니다.
그는 편지 네 장만을 남긴 채,
마지막까지 당신만을 위한 채.
황 하야아름:아저씨가 앞으로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안 될까요?
세상의 작은 모래알일 뿐인 우리가 지구의 하늘에 스치며 기적적으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밤.
실제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이 극한의 거리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