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 뽀또의 부름
뽀또의 부름
카테고리
작성일
2025. 1. 8. 01:28
작성자
마스터 뽀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KP 또는 시나리오를 플레이 한 PL만 열람바랍니다.

 

 

 

 

 

 

 

 

[COC 시나리오]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약칭 '여름법' 플레이로그 백업

 

 

 

나만이 널 오롯이 생각해.

 

 

 

 

 

 

 

 

 

KPC  스나노 슈이치 / 뽀또

PC  쿠로바네 히요리 / 다랑

 

 

 

 

 

 

 

 

 

25.01.07.

플레이타임: 4시간

 

 

 

 

 

 

 

 

 

 

 

 
COC 7th fanmade scenario
 
여름법 타이틀
 
2025. 01. 07.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당신은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쿠로바네 히요리: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쏴아아-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문을 열어줄 건가요?
 
아님, 조용히 그 누군가를 무시할 건가요?
 
쿠로바네 히요리:..? 이 날씨에 누가..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본다.)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스나노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스나노.
 
쿠로바네 히요리: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스나노의 불안한 눈길이 당신을 향합니다.
 
한참을 살피더니, 이유 모를 한숨도 함께 뱉네요.
 
스나노 슈이치:괜찮아?
 
…무엇이?
 
그리 묻는 스나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우산이 없어 당신의 집을 방문했다는 이유도 함께 덧붙입니다.
 
우선은 젖은 스나노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좋겠죠.
 
쿠로바네 히요리:.. 일단 들어와.
 
스나노 슈이치:하핫, 쫄딱 젖으니까 순순히 들여보내주는 거야? (신발장 안으로 들어오고는 현관 문을 닫는다.)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스나노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스나노는 젖은 탓에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다 젖은 사람을 내보낼 정도로 매정하진 않아. (상태가 이상해 보였던 게 신경 쓰여 시선 옮겨가며 차근히 너를 살펴본다.)
 
 스나노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스나노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찰나,
 
그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분명 어떤 형태를 이루면서요.
 
쿠로바네 히요리:? (네 손 덥석..)
 
다시 살펴본다면 스나노의 손등은 멀쩡하기만 합니다.
 
스나노 슈이치:(멀뚱..) 음? 왜?
 
쿠로바네 히요리:... 아무것도. 얼른 들어와. (먼저 안으로 들어가며 들어오라는 듯 고개 까닥인다. 다시 들어온 뉴스로 시선 옮기고)
 
스나노 슈이치:갑자기 손을 잡길래 뭔가 했는데~ 재미없기는. (키득거리고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두어걸음 들어간다.) 바닥 더럽혀서 미안, 우산 챙길 정신이 없었어.
 
 뉴스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쿠로바네 히요리: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그랬던가요?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날씨 좀 봐. 여름이니까,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잖아. (화장실로 가 수건을 찾아본다.)
 
스나노 슈이치:응,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빨리 떠나던가 해야지...
 
 화장실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건을 꺼내던 당신,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요?
 
쿠로바네 히요리:..? (일단 수건을 몇 개 꺼내 겨우 들어와 있던 네 머리에 올려준다.) 닦아.
 
스나노 슈이치:이러면 보통 상냥하게 닦아줄 법도 한데... (들으란 듯이 꿍얼거리며 올려준 수건을 머리에 비비며 물기를 닦아낸다.) 집 너무 습하지 않아? 뭐라도 틀어놓지.
 
쿠로바네 히요리: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직접 할 수 있잖아. (네 꿍얼거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파를 가리킨다.) 다 닦으면 거기 앉아있어. 습하면 제습기 틀어도 상관 없어. (부엌으로 가 찬장을 뒤적여본다.)
 
스나노 슈이치:너무하네~ (젖은 옷깃을 쭉 잡아당기면서) 갈아입을 옷은 없어? 몇 번 벗어놓고 간 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여긴 없으려나... 옷 좀 빌려줘~
 
 부엌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찬장 문을 열어보면...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차를 그렇게 자주 마셨던가요?
 
지금 스나노에게 줄 수 있는 건 따듯한 물이 전부입니다.
 
:뭐라도 내어주고 싶을 경우에는 행운 판정 가능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기준치: 60/30/12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아무리 뒤적거려 봐도 티백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텅 빈 찬장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다 미지근한 물 한잔이나 받아 네게 건넨다.) 언제 벗어 놓고 갔다는 거야. 아무거나 줄 테니까 작아도 그냥 입어. (옷장 뒤적여 아무 옷이나 던져준다..)
 
스나노 슈이치:차라도 내어줄 줄 알았더니 맹물이야? (하지만 얌전히 받아마심..) 꽤 들락거렸는데 한 벌도 없단 말야? 그럼 내 잃어버린 옷들은 대체 누구 집에 있는거지... (미지근한 물을 홀짝이다가 던져주는 옷을 낚아채고는 상의를 펼쳐본다.) 아, 이거 딱 봐도 작을 것 같은데.
 
쿠로바네 히요리:갑자기 찾아온 주제에 바라는 게 많아. (네 이마 딱콩) 여기저기 다니니까 네가 더 잘 알겠지. (기억 되짚어보는 듯 가만 생각해본다. 아마 옷장 어딘가에 있을 듯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포기.) 그래서 불만이야? 입기 싫으면 그냥 벗고 있다가 감기 걸리던가. (ㅡ.ㅡ)
 
스나노 슈이치:(아야Xp) 그럴 리가! 입어, 입어. 하여튼 까칠해~ (젖은 옷을 벗어두고는 꺼내준 옷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타이트하다... )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스나노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스나노,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내일은 개학식이니 스나노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거센 빗줄기에 집에 혼자 계실 스나노의 할머니가 걱정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네 옆에 앉아 가만 창 밖을 바라보다) 비 더 내리기 전에 집에 가야겠는데. 할머니 기다리셔. (멍한 너를 살짝 건드려본다.)
 
스나노 슈이치:할머니? 아아... 괜찮으실 거야. 집에 안 들어가는 일도 허다한데 이 정도로 뭐. (건드리는 손길에도 멍하니 있다가 금세 원래 분위기로 돌아와서는 장난스레) 빨리 쫓아내고 싶어 죽겠나 보다? 응?
 
쿠로바네 히요리:아.. 불효자라 이 말이지. (눈 가늘게 뜨고 빤히..) 쫓아낸다고 순순히 나갈 것도 아니면서. (턱 괴고 네게 시선 고정한 채...)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대신, 할머니께 연락은 해.
 
스나노 슈이치:아, 불효자까지 갈 것 있나~ (큭큭 웃고) 날 너무 잘 아네. 예전엔 이렇게까지 너그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_^) 새삼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 않아? 내가 너 초등학생 때 처음 봤었나? ... 이 동네에 참 오래도 있었네.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그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스나노의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지금 당신은 무얼 보고 있는 거죠?
 
스나노 슈이치:이번에는 잘 될 거야.
기억할 수 있겠지?
 
쿠로바네 히요리: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스나노 슈이치:이번에는 학교에서 만나자. 기다리고 있을게.
 
쿠로바네 히요리:..? 뭐? 잠깐. 무슨 소리야 그게?
 
무어라 말하든 스나노는 당신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그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 놓인 스나노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나노가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
 
깜빡.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쿠로바네 히요리:....?
꿈.. 인가..?
그럴리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자리를 확인해본다.)
 
스나노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손으로 만져본 가구들은 모두 마른 상태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진짜 꿈인가.. 싶어 창 밖을 바라보고..)
 
 창밖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갈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쿠로바네 히요리:... (연락을 해보려 핸드폰을 찾아 일어나다 뉴스로 시선이 향한다.)
 
 뉴스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중입니다.
 
맑음, 맑음, 그리고… 맑음.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날짜나 시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던 그때 그대로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한 주 내내 장마라고 하지 않았나..? (이상함을 뒤로 하고 핸드폰을 찾아 '스나노' 에게 전화를 해본다.)
 
스나노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신호음만 한참 이어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로 시작하는 기계음이 울립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습니다.
 
...
 
그 외의 다른 것을 살펴보아도 평범하고 익숙한 당신의 집일 뿐입니다.
 
창밖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처럼 눈이 따가운데도?
 
폭우도 스나노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스나노는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오늘 겪은 일이 무엇인지….
 
…멍한 정신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하아.. (제 머리를 헝클어 트리고..)
일단.. 내일 생각하자.
 
...
 
...
 
...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당신은 배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그즈음에서 스나노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 쿠로바네,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당신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걸치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입니다.
 
스나노는 보이지 않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아 그래.. 근데 혹시, 스나노 못 봤어?
 
친구: 스나노? 그게 누군데? 난 처음 듣는 이름인데... 혹시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 친구?
 
쿠로바네 히요리:? 무슨 소리야, 우리 반이잖아. 진짜 몰라?
 
친구: 우리 반? 우리 반에 그런 애가 있었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너 뭐 꿈이라도 꾼 거 아니야? 잠이 덜 깼나... 아침부터 왜 이래? (쿠로바네 눈 앞에 손을 휘적인다.)
그보다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냐?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쿠로바네 히요리:그건 내가 할 말이야..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어이없어 인상을 구기며 친구의 손을 치운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온 거 같은데.. 오늘부터 쭉 맑다잖아. (괜히 끝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봐본다..)
 
친구: 그게 무슨 말이야? 요즘 계속 맑은 날씨만 이어지고 있잖아. 어제 비가 왔다니... 아무래도 너 잠이 덜 깬 듯?
 
쿠로바네 히요리:(인상 팍... 더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눈빛..) 됐어. 빨리 가라.. (걸쳐져 있던 팔을 내리고 등을 툭 친다.)
 
친구: 표정 뭔데?!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뭔가 번뜩 떠오른 얼굴을 하더니) 아, 맞다. 동아리 보고서!
 
걸음을 멈춘 친구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그러니 남겨진 당신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쿠로바네 히요리: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아까 그 친구는 스나노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놀리는 걸까요?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화면을 보면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 끊기기 직전에서야 전화를 받아본다.)
 
...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쿠로바네 히요리:..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누구세요.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스나노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스나노..?
너 지금 어디야?
 
스나노 슈이치:아... 먼저 학교에 도착했어. 알아볼 게 있어서 도서실에 들리려고.
 
쿠로바네 히요리:너.. .. 어디 가지 말고 도서실에서 딱 기다려.
(당장이라도 달려갈 생각..)
 
스나노 슈이치:하하, 왜? 뭐 할 말 있어? ... (잠시 침묵했다가) 너는 내 이름 기억하는 거 맞지? 방금 내 이름 부른 거 맞지?
 
쿠로바네 히요리: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연하게도 스나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문득, 아까 그를 모른 체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스나노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나, 얼굴이 사라지는 중이야.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이번엔 판타지 영화라도 본 걸까요?
 
그러나 그는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차로 시선을 옮기면…
 
바퀴가 없습니다.
 
잘못 본 걸까요?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 불안하게만 느껴지네요.
 
쿠로바네 히요리:.. (일단 얼른 학교로 향한다..) 도서실에 가봐야겠어..
 
도서실로 향하나요?
 
쿠로바네 히요리:(서둘러 도서실로.. 후다닥..)
 
서둘러 도서실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도서실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스나노의 기척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간 걸까요.
 
...
 
수업이 시작할 지도 모르니 우선 교실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찾는 이는 교실에 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쿠로바네 히요리:.. 가만 있으라 했는데 어디 간 거야.. (일단 교실로 향한다..)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당신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정신을 고쳐잡고 스나노를 찾으면,
 
당신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스나노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스나노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저기 있던 스나노 책상 어디갔어?
 
 친구들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언제 도착했는지 등교 시간 때 만났던 친구도 보이네요.
 
등교하며 만난 친구: 아까부터 계속 그 친구 얘기네. 걔가 누군데 그래?
 
옆에 있는 친구: 처음 듣는 이름인데, 우리 반이야?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는 줄도 몰랐어.
 
쿠로바네 히요리:방학 전까지만 해도 잘 놀았잖아. 갑자기 왜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그래? (어이없음..)
 
등교하며 만난 친구: ...내가? 내가 걔랑 아는 사이였다고?
 
당신을 놀리는 기색이 아닙니다.
 
정말, 진지하게 스나노의 반 친구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네요.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당신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들 스나노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쿠로바네 히요리:... (친구에게 돌아오는 대답을 무시한 채 교탁에 붙은 자리표를 확인한다.)
 
 자리표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스나노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스나노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서 그런가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보고 고개를 들어 이상할 정도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기괴함을 느끼고 인상을 구기면 매미 울음소리가 귀에 닿는다.)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
 
띠리링―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쿠로바네,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쿠로바네 히요리:...
(이상함을 뒤로 한 채 자리를 찾아 앉는다.)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출석 역시 스나노의 이름은 건너뛰고 이어지네요.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선생님: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Where.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선생님: 쿠로바네 군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밝은 머리칼, 나란히 선다면 조금 올려다볼 정도의 키, 묘한 그의 분위기까지.
 
선생님: 쿠로바네 군?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스나노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 저 상태가 안 좋아서 보건실에 가볼게요. (교실 밖으로 향한다.)
 
선생님: 쿠로바네 군??
 
이어지는 당황한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교실을 벗어납니다.
 
...
 
끼익-
 
문을 열고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백색 머리카락.
 
쿠로바네 히요리:스나노.
(발 걸음을 조금씩 옮겨 다가가 본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익숙한 백색 머리카락,
 
나란히 선다면 조금 올려다볼 정도의 키,
 
윗 단추를 두 개 풀어헤진 교복 셔츠.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이성 감소 없음
 
당신에게,
 
그리고 스나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뭔가 이상해.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해.
너는 날 알고 있지? 지금 내 얼굴, 보여?
 
답지않게 울먹이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당신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눈앞에 있는데도 도무지 그 형태를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가진 스나노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이란 것을요.
 
스나노 슈이치:...안 보이는 구나.
 
손을 뻗으려던 스나노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당신을 와락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박자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
 
스나노 슈이치:미안, 좀 무서워서 그러는 데 잠깐만... 미안해. (끌어안은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다.)
 
쿠로바네 히요리:... (가만 안겨있다 손을 올려 마주 안는다.) 스나노.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네가 무슨 표정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하다. 마주 않으며 네 등에 닿았던 손은 너를 토닥인다.)
 
스나노 슈이치:...모두에게 잊혀진 것 같아.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 해. 너만이 날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어... 너만이... (끌어안은 어깨는 볼품없이 떨리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진정한 듯 천천히 당신에게서 떨어집니다.
 
스나노 슈이치:차원의 관문도 사용할 수 없어... 마치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아.
 
차원의 관문?
 
쿠로바네 히요리:..? 차원의 관문.. 그게 뭔데..?
 
스나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습니다.
 
스나노 슈이치:...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어?
 
쿠로바네 히요리:무슨 기억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거 같은데. ..
 
스나노 슈이치:... (곤란하단 듯이 침묵하다 머리칼을 쓸며) 우린 원래 세계에서 신도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어. 도망치던 중에 차원의 관문을 사용했지만,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잖아?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기억을 잃기도 했는데...
 
…우리가?
 
스나노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의 파편을 공개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스나노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스나노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쿠로바네 히요리:왜? 여태 까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엔 왜 네가 사라지는 건데.?
 
스나노 슈이치:이 세계는 확실하게 다른 곳들과 달라. 다들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난 사라지는 중이고...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쿠로바네, 너 역시 날 잊을지도 몰라.
 
쿠로바네 히요리:싫어. 누구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그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그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스나노 슈이치:글쎄, 누구 마음인지... 적어두면 더 기억하기 쉽겠지. 잊지도 않을 거고...
 
그저 희망 사항일지라도.
 
쿠로바네 히요리:... (펜을 꾹 쥔다.. 이성은 이토록 잔잔한데 손 끝이 조금 떨리는 건 사실 무서워서 인 걸까. 너에 관련된 것들을 하나 씩 적어 내려간다. 이름, 나이, 신장, 외모...) .. 또 뭐가 있지..
 
스나노 슈이치: 몸무게는 음, 표준? (부러 더 장난스러운 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잊힘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서 일지.) 취미는... 딱히 없는데 요리라고 하자. 또 뭘 써야 네가 날 기억할 수 있지... 그때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쿠로바네 히요리:일단 그걸로 되는 건가.. 애초에 너보다 내가 더 많이 만들잖아.. (평소처럼 네 말에 태클을 걸면서도 네가 말하는 것들을 한 자 한 자 적고..) 처음 만났을 때? 아마 초등학생 때.. 사육사.. 동물 서커스..? 인가 했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는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옅은 웃음을 뱉는다.)
 
스나노 슈이치:그러니까 취미지~ (큭큭 웃고는) 그러고 보면 너 요리를 잘했었지. 한동안 평행세계를 왔다갔다 했더니 평범한 일상도 이제 먼 얘기 같네... (가만히 네 얘기를 듣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때 그 동물들은 내가 좋아서 데리고 온 게 아니라니까? 걔네가 막 쫓아오는데 난들 어떡하냐고~
 
쿠로바네 히요리:... 나중에 만들어줄게. 오랜만에 먹자. .. 그렇다고 먹기만 할 생각은 하지 말고. (웃는 너에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린 듯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너를 바라본다.) 한 둘이 아니었잖아. 그정도는 떼어 놓고 다니는 게 맞지 않냐고. (펜으로 네 이마 톡.) 내가 동물을 싫어했으면 어쩌려 그랬어.
 
스나노 슈이치: 하핫, 수저라도 챙길까? (내 불안을 옮겼을 까봐 내내 네 긴장한 기색이 신경 쓰였는데, 조금이나마 풀린 듯한 모습을 보고 덩달아 안정을 찾는다.) 꼭 만들어줘. 오랜만에 네가 해준 음식 먹고 싶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다가 펜이 이마에 닿을 때 눈을 감고) 뭐~ 그랬으면 너한테 친한 척 하기도 힘들었겠지? 그럼 고등학생 때가 제대로 된 첫만남이 됐겠네. 우리 중학생 땐 거의 모르는 사이였으니까.
 
쿠로바네 히요리:수저 정도는 기본이지. (어느새 상황을 신경 쓰기 보단 이 순간에 빠져있는 것 같다. 너에 대해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이 오늘 하루 중 어느 때보다 가장 마음에 든다.) 집에 와서 먹고 싶은 거 말하면, 얼마든지. (눈 감은 너에게 시선 고정하다 네 이마에서 펜을 떼고는 손으로 살살 문지른다.) 반이 멀어져도 굳이 찾아올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 다시 얼굴 보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 되진 않은 거 같은데. 잠깐 스쳐 봤다고 거짓말 치고 달려오게 되어버릴 줄은. (직접 말을 꺼내면서도 본인도 이해가 안되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하며 관계 요약을 하는 듯 수첩에 적는다.)
 
스나노 슈이치:(가만히 네 손길을 받으며 철조망에 등을 기댄다.) 지금은 어때? 반이 멀어져도 굳이 찾아올 만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 (네가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갈 게 불 보듯 뻔하긴 하지만. 장난스레 덧붙였다.) 사실은 세계를 함께 건널만큼 깊은 사인데 말이야. 기억을 전혀 못 해서 얼마나 서운했던지~ 참... 외롭더라. 네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외로웠어.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 한 조각이 된 기분이었네. 내가 기억을 잃었던 세계에선 네가 외로웠겠지?
 
쿠로바네 히요리:글쎄, 어떨까. 내 쪽에서 대답을 들어봤자.. 말했듯이, 매번 찾아오는 쪽은 네 쪽이니까. 그래도.. 항상 찾아오는 네가 안 보이면 허전하고 심심하다고 느낄 만큼은 돼. 심심하다고 느낀 것 이상으로, 벌써 찾아와 버렸는데. (대답이 됐으려나? 빙빙 돌려 말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더 이상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자신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네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듯 네 반응을 기다린다.) 기억이 없는 나로써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있는 나는 얼마나 그랬을지. 대충 짐작은 가고. 그래도. (따라 철조망에 등을 기대고 몸을 웅크려 고개를 숙인다..) 둘 다 기억을 잃은 쪽을 포기하지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함께인 거겠지. (여태까지 적었던 수첩을 넘겨가며 읽어본다.)
 
스나노 슈이치:...하하! 감동인데, 이거. 너한테 꽤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쁘네. (네게 보였을진 모르겠지만, 분명히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난 네가 소중해, 쿠로바네. 원래도 널 꽤 좋아했지만 함께 세계를 넘으면서 더 그렇게 느끼게 됐어. 함께 역경을 헤치면 가까워진다잖아~ 아직 그 파도를 넘는 중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까워진 것 같다. (손에 들린 수첩을 힐끔 바라보며) 이제 좀 많이 적었어? 그 정도면 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쿠로바네 히요리:... 같은 게 아니라 그렇다고 말하는 거야. (시선을 돌리다 네 웃는 모습을 눈에 담으면 어느새 저도 웃고 있다.) 역경을 헤치는 위험한 짓 같은 거 안 해도 충분히 가까워졌을 거 같지만. (수첩을 한 장씩 넘기며..) 무리지.. 이정도 적었다고 해도 안 적은 게 산더미인데.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하고.. 기억은 없어도 매번 되새길 정도는 되는 거 같네.
 
취미, 좋아하는 것, 당신과의 관계나 일화,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그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당신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스나노 슈이치:다시 만날 방법이 있겠지. 그러니까, 날 잊지 마.
쿠로바네, 마지막으로 내 이름 불러줄래?
 
쿠로바네 히요리:... 스나노.
 
계속,
 
다시.
 
불안하게 떨리는 그 목소리.
 
스나노는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스나노..
스나노.. 슈이치.. (기댈 수 있다면.. 따라 기대본다.)
 
스나노 슈이치:...기억해 줘, 히요리.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
 
...
 
...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에 대한 정보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툭,
 
당신이 움직이자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종이를 주워본다.)
 
작은 쪽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쪽지
 
쿠로바네 히요리: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3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암호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도서실 창구번호를 표기한 것 같네요.
 
...
 
띠리링―
 
…그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쿠로바네 히요리: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를 오롯이 기억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도서실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쿠로바네 히요리:(수첩을 손에 꽉 쥔 채. 도서실로 향한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 아이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순서대로.. 종교가 적힌 책장으로 가본다.)
 
 종교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쿠로바네 히요리:... 저주.. 세계.. (다음 칸인 예술 책장으로 가본다.)
 
 예술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쿠로바네 히요리:.. (흐려지는 기억에 잠시 숨을 고르고 수첩을 핀다.)
 
그래요, □□□는 이런 사람이었죠.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 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단순히 문장 몇 줄로 붙잡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대로 그를 잊을 수는 없는데...
 
쿠로바네 히요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쿠로바네 히요리:(.. 다음, 언어 칸으로 가본다.)
 
 언어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모두 살펴본 후, 당신은 800번대 문학 책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NN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편지
 
그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그래요, 스나노.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쿠로바네,
 
당신에게 스나노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쿠로바네 히요리:이상한 고민을 하고 있네.. 네가 없는 세계는 허전하다니까.. (망설임은 일절 없는 듯.. 종이에 적힌 '스나노' 이름을 쓸어 만져 본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불러요.
 
거짓된 여름을 부숴요.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스나노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쿠로바네 히요리:스나노..
 
...
 
깜빡.
 
당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쿠로바네.
 
쿠로바네 히요리:(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창밖으론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
SAN Roll
기준치: 46/23/9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
 
당신은 깨닫게 됩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요.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당신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스나노 슈이치:쿠로바네!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스나노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스나노의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쿠로바네 히요리: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나노 슈이치:당장 밖으로 나와,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어라?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요.
 
스나노 슈이치:받아줄 테니까 그냥 뛰어내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스나노가 소리칩니다.
 
말이 쉽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려요, 쿠로바네.
 
응원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아니, 무리지.. (말과는 다르게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창 밖으로 뛰어 내린다.)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스나노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스나노가 묻습니다.
 
스나노 슈이치:내 이름, 기억나?
 
쿠로바네 히요리:당연하지. 스나노 슈이치. 잖아.
 
당신이 답을 하자,
 
스나노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스나노 슈이치:그럼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쿠로바네 히요리:..? (눈 데굴..) 소중한 관계?
 
당신이 답을 하자,
 
반짝.
 
둘의 손등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스나노 슈이치:이것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는?
 
이번 물음은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쿠로바네 히요리:초등학교?
 
당신이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스나노 슈이치:하하, 나와바리라고 했어야지. (키득거리고)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집으로 돌아갈 거지?
 
쿠로바네 히요리:전세 냈다는 거 거짓말이었으니까. (고개 까딱) 응,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답을 들은 스나노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손등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스나노 슈이치:길었던 여정이네. 빨리 돌아가서 네가 해주는 밥도 먹고... 좀 쉬고 싶어.
 
쿠로바네 히요리:.. 계획 변경할게. 우선 한 숨 자고 나서 아침으로 밥을 먹는 걸로. 말 안 해도 집 도착하면 기절할 거 같고.
 
스나노 슈이치:그러자, 먼저 한숨 자고... 솔직히 또 엉뚱한 세계에 떨어진 걸까 봐 걱정이 돼서 잠이 잘 올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쿠로바네 히요리:스나노, 겁이 많네. 난 별로 걱정 되지는 않는데. 너 있으니까. 무서우면 잘 때까지 토닥토닥이라도 해줘? 농담이야.
 
스나노 슈이치:왜 농담이야? 토닥여 줘, 잠들 때까지!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스나노 슈이치: 다음 세계에서도, 날 기억해 줘. 나도 널 기억할게.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쿠로바네 히요리:기억할게, 몇 번이고 불렀으니까. 잊을 리가 없을 걸.
 
당신이 마지막으로 답하자,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하나,
 
둘,
 
셋.
 
...
 
깜빡.
 
END 1. 집으로, 함께.
 
보상: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가 살던 세계.

 

 

 

BGM

01 :: https://youtu.be/lklPBqAbCzU

02 :: https://youtu.be/csuNEUhCGTw

03 :: https://youtu.be/t2ySEisO2sc

04 :: https://youtu.be/wqMgDFE-zMw

05 :: https://youtu.be/9KAGXPnPvIU

06 :: https://youtu.be/CyuvPeiSPPo

END :: https://youtu.be/OLnTPktv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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